잊지 않겠습니다.

겨울의 흔적이 남아있는 3월과는 달리 4월은 완연한 따스함이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바람이 많이 붑니다. 어제에 이어 주 중에 또 비 소식이 있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꽃망울이 다 터지기 전에 왠 수난인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움츠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요.
주머니가 가볍고, 머리는 무거운 시기에 움직이지 않으면 그대로 굳어버릴지도 모릅니다.
목요일과 일요일 날씨가 좋다고 합니다.
이날만큼은 무형의 고통에서 벗어나 사람 구경도 하고 땀도 흘려보는 건 어떨런지요.

보고 싶은 사람도 많고 새로 인연을 만들고 싶은 사람도 많지만
정작 자신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힘든 일이죠?

새로운 시작은 희망입니다.
새로운 계절엔 희망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3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2009/03/31 00:36 | Posted by B군
1월이 지나갑니다. 1년의 1/12가 지나갔습니다.
2월이 지나갑니다. 1/6이 지나갔습니다.
3월이 지나갑니다. 1/4이 지나갑니다.

시간은 이렇게 점점 빠르게만 흘러갑니다.
나이가 오래될수록 더 그런다죠?

어디가 끝인지 짐작할 수 없는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흘러만 갑니다.
그런데 이것도 다 착각이랍니다. 바로 상대성 이론이죠.

가끔은 야속하고, 가끔은 멈춰주었으면 하는 녀석.

제발 여기서 시간이 멈춰주었으면 했던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 기억들이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그럴 땐 차라리 사라지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3월의 마지막 날을 이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TAG 기억, 추억

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2009/03/29 20:16 | Posted by B군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끝없이 외치다 보면 언젠가 내 앞에 나타나 줄까요?
한번쯤은 그렇게라도 보고 싶을 때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어요. 다 알고 있다고 믿고 싶은 걸지도 모르지만요.
문제는 가슴과 배가 따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다이어트 해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먹으면 안 되는데 음식에 손이 가는 그 때를

별 수 있나요.

이 또한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사람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되뇌입니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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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면 어떻게 될까?

2009/03/28 14:58 | Posted by B군
1999년 3월, 고등학생이 되었다.
우리 나라 청소년들이 입시 경쟁에 뛰어드는 시점. 바로 그 시작에서 나는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끼며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 하면서 착실히 공부하려고 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너희들이 고등학교 가면 지금 반 등수 x2가 될테니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고 충고를 들었다.
설마하는 마음에 치룬 첫 번째 시험! 중3 때 들었던 그 말이 딱 맞아드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 분명 있을 거라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2009/03/26 23:42 | Posted by B군
내 생각과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글과 말로서 가능하다.
말은 고칠 수도 없고, 하고나면 후회가 남기도 한다. 그래서 가급적 말을 아끼려고 한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아야 되는데 가끔 주체하지 못하고 마구 뱉어내기도 한다. 역시나 후회가 남는 일이다. 항상 말은 하고나면 좀 더 좋은 말이 떠오른다. 아이러니다. 게다가 듣는 사람은 그 많은 말들 중에 안 좋은 것만 기억에 남긴다. 최악이다.

반면에 글은 쓰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쓰다가 몇 번씩 고치면서 다듬어 갈 수 있다. 물론 쓰고 나서도 고친다.
글은 그 자체로서 기록이 된다. 인터넷이 막 활성화될 무렵부터 조금씩 습관을 들인 게 지금의 블로그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블로그에 온 힘을 쏟아서 수익도 낸다는데 난 그렇게는 못 하겠더라.
이전보다 월등히 발전한 인터넷 환경과 검색 기술 덕분에 또 하나의 비즈니스 영역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로 인해 인터넷 공간에서 마음만 먹으면 블로거들끼리 손쉽게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 예전 BBS나 인터넷 동호회처럼 제한된 공간이 아닌 인터넷이라는 사실상 제한이 없는 무한한 공간에서 말이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긴 한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라서 아직 엄두를 내지 못 하고 있다.
글을 쓰고 댓글도 달아주고 이러면 글 쓰는 일이 더욱 즐거울 테니 한번쯤은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일듯

아직 제목에 부합하는 얘기를 안 했다.
이제 그 얘기를 해보려 한다.

그 첫 시작은 1999년이었다.
인터넷 광풍이 우리 나라를 엄습해 오고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자기 집을 갖추고, 나도 만들었다.
주로 지인들이 방문자의 대부분이었고, 수동으로 신청해야 등록이 되는 인터넷 검색 엔진에 등록도 해놨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좋은 자료가 많이 생기면 방문객들도 늘어날 텐데 그렇게는 못 했고 나중엔 그런 것에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됐다.
지금처럼 블로거 뉴스가 대형 포털에 노출이 되고, 유명한 블로그의 트랙백을 통해 내 블로그를 노출시킬 수 있는 구조는 그때 당시 불가능할 줄 알았다. 그런 개념조차 없었다.

현재도 서비스되고 있는 싸이월드는 아직도 그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한 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그 명성이 많이 누그러졌다. 사적인 사진이나 글을 올리는 유저들이 많기에 1촌이라는 폐쇄적인 운영방식을 바꾸긴 힘들 것처럼 보인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공간에 게시판을 열어놓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다.
그냥 썼다. 끄적끄적. 혹시나 누가 볼까 약간 신경도 쓰면서 말이다.

중간에 싸이월드도 잠깐 이용했지만 역시나 내 타입은 아니었다.
2006년 블로그를 처음 개설하고, 그 때 시작한 사진을 한 장씩 올리며 블로깅을 했다.
글, 사진, 음악
이 세 가지만으로도 많은 글을 쓸 수 있었다.
심적으로 많은 위로를 필요로 했던 시기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었나 생각해 본다. 글을 하나 올리는 데도 신경을 썼던 걸로 기억한다. 사진을 찍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내 생각 또는 하고 싶은 말

2007년 티스토리로 공간을 옮기고 또 다른 변화를 맞이했다.
4년간의 군 생활도 마감했고, 생활 정치라는 것을 겪게 된다. 거기에다 현실에 대한 고민과 내게 당면한 과제들도 함께.
방문자 수도 부쩍 늘었다.
내 블로그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 어떤 정보를 찾아 헤매다 이곳에 오신 분들이다.
이 정보들보다 내가 쓰는 글 자체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게 내 바램이다.
더불어 글로 인해 내 생각이 정리되거나 또는 그 방법을 조금씩 알아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기득권이 자리를 잡아가는 곳이라면 반드시 생기기 마련인 Line.
그 줄서기 문화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인간은 유전적으로 편한 것을 추구하게끔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고 한다.(인간의 이기심)
가끔 예외적인 것도 있다. 그러나 혹자는 그것 또한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하는 행동이기에 거기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뭐 거기까지 동의하긴 어렵지만, 대개 일신의 안위를 위해 생활해 왔고 그것이 인간 문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에 동의한다.

처음 태어나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경험하고, 학교 생활을 하면서 또래 집단이라는 무리를 형성하고, 사회에 나가서는 상급자를 중심으로, 동료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 내에 속하게 된다.
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이런 집단 속에서 중심이 되는 이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없으면 만든다.
집단은 서로의 소속감을 확인할 수 있고,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 준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여기까지 보면 나쁜 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A라는 회사에 다니는 김 씨와 이 씨. 이 두 사람은 진급을 앞두고 있는 경쟁 상대이며, 입사 동기이다.
입사 후부터 절친한 사이로 둘도 없는 친구지간이었지만 지금은 서로 만나는 일도 줄어들고 진급하는 것 외에는 여념이 없다."

근데 여기에 인간 관계라는 요소를 삽입해 보자. 그리고 관계라는 혜택을 본 사람이 진급을 했다.
이런 일이 없을 것 같나?
대인 관계로 혜택을 받기 원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득권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었다.
지연, 학연과 이권과 금권으로 이루어진 기득권들.
가끔씩 곪은 상처가 터지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일 것이다.
일단 무언가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그 끝이 우리의 이성으로 가늠하기 힘든 이상. 우리는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기득권이 그것을 방해하는 주요 원인일 것이다.

불과 몇 년 전, 모 자동차 회사 공장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수천만 원의 금액을 줘야 했다.
심지어 목욕탕 목욕관리사(x밀이)로 일하기 위해서 돈을 줘야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베푼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럼 화이트 칼라 직종은 어떨까? 차라리 돈을 주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든다.

바로 위의 사례는 내가 오바하는 거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인간이란 본성이 바르게 살도록 되어 있다. 비뚤어진 삶의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오래 잘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뿐이다."

나는 이 말을 믿고 싶다.
비록 내가 잘 나고 부유하지 못 하지만,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가듯 나의 길을 찾아가고 싶다.
나에게는 "약간의 긴장감"이면 충분하다.


자기 전 누워서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최근에 겪었던 좋지 않았던 일.
앞으로에 대한 걱정.

어제는 좀처럼 잠 들 수 없는 밤이었습니다.
최근에 겪었던 좋지 않을 일과 과거에 겪었던 일까지 줄줄이 사탕으로 엮여서 온통 제 머리 속을 가득 채웠거든요.

저를 잠 못 이루게 했던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합니다.
그게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기득권"입니다.

2006년이었습니다. 저는 부사관으로 군 복무를 하고 있었고, 처음 2년간 근무하던 곳을 떠나 새로운 근무지로 발령을 받아 새로 부임한 상태였습니다.
그곳의 부사관들은 모두 같은 직별을 가지고 있었고, 저 혼자만 다른 직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장교도 있고, 병도 근무하는 부서였지만 누가 뭐래도 분위기는 부사관들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습니다. 뭐 이쯤 얘기하면 군생활을 경험하신 분들은 짐작하실 겁니다.

제 직별로 부임한 첫 보직자였고, 보통의 부사관들처럼 타 직별에는 그다지 관심없는 사람이었죠. 그들이 어떻게 생활을 하는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 생각했고, 조직도 상으로도 주로 장교 또는 저 혼자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내게 요구했던 것은 너의 정체성을 다시 잡아라 였습니다. (여지껏 너의 직별은 잊고 우리한테 기어라)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들이 나에 대해 적응했고, 저 또한 업무적으로 인정 받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기득권은 한번 생기면 깨지기 힘듭니다. 장교들이 이것을 깨기 위해 무리한 행동을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무리죠. 장교는 길어야 2년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발령납니다.
당시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보잘 것 없는 하사 계급장을 달고 있는 초급 간부였습니다.
처음에 엄청나게 갈등을 불러 일으켰고, 심지어 내쫓길 것만 같았으며, 저는 제 인사를 맡았던 분께 애걸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될리 만무하죠.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있었습니다.
같은 부서 사람들과 술 한번 제대로 안 마셔봤고, 저는 제 고집대로 해야 될 일을 찾아서 하나씩 해 나갔습니다.
대위 부서장과 준위/원사가 함께 있던 부서였죠. 그렇기에 저에게도 희망이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근은 차치하고서라도 출근은 가장 먼저 했습니다.
내 업무가 여기서 처음하는 것인만큼 그들에게 어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업무 보고를 만들어서 올리고, 나름의 재주로 예쁘게 꾸미고 그들의 취향에 맞췄습니다.
결코 좋아서 했다기 보다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사 계급장 달고 업무 보고를 하네...?"
처음 생긴 보직이라 대충 저를 보냈습니다만 전 그 직책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지휘 계통상 바로 부서장에게 연결될 수 있었죠. 부서 내 다른 부사관들은 제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장교들이 칭찬해 주고 그러니깐 일 잘 했나보다 그렇게만 생각했을 겁니다.

처음 3개월은 참으로 고됐습니다. 쉽게 어울리고 묻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제 딴에 자존심이 허락해 주질 않아서 말이죠.
그 이후로 돌아온 저에 대한 평판은 대충 이 정도 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고집 세고, 건방진 뭐뭐 정도...일은 뭐 그럭저럭...
근데 사회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직도 인간 관계입니다.
좋죠.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존중과 배려"라는 것이죠.
아마 군대였기에 박차고 나올 수 없어 나름의 살 궁리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업무에 집중하는 일이 생겼을 뿐이지 전역하고 나서 사회 생활하면서도 내가 그런 일을 겪을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너무 경험이 적고, 어려서 그런 것이겠죠?
근데 그게 과연 정상이고 올바른 것일까요?

"내가 나라에 충성하려고 군대에 있는 거지, 너한테 충성하려고 들어온 줄 아냐?"

바꿔 말하면 "회사에 보탬이 되려고 들어온 거지, 너한테 굽실 거릴려고 들어온 줄 아냐?"

제가 단언하건데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예의가 안 갖춰져 있다면 그 조직은 그들만의 그라운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다양함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새로운 것 또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1. 연애편지를 쓰다
2. 考/ Logos

두 블로그의 글을 읽었다.

1번 블로그는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남성들을 위한 글이었고, 2번 블로그는 남자들이여 각성하라?가 논점인 것 같았다.

먼저 나의 성향을 밝히자면 중간에서 약간 여성쪽으로 치우쳐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흔히 페미니스트라고 한다.
인류 역사가 시작되고 여성은 항상 남성보다 아래에 있었기에... 현대 문명과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남성 우월주의라는 사상은 뿌리뽑혀야 한다고 생각되기에...
나의 입장을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남녀 각자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못하는 것이 있으니깐... 어디까지나 성을 떠나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는 문제라 할 수 있겠다.

어딘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래와 같은 글을 접한 적이 있었다.
"여자들이여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 아무나 덥석 잡지 말아라. 평생을 후회하며 산다."

그럼 남자들을 위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남자들이여 결혼만이 능사가 아니다."

나는 여기서 약간의 혼란을 느낀다.
인간으로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 유전자에 입력되어 있는 것은 자손을 번식시키고, 이를 유지하는 것이 첫 번째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두가 다 이기적이 된다면 맨 밑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사랑이란 감정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아무렇지 않다가도 어느 순간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혹자는 이것이 짧게는 몇 개월, 길어봐야 수 년을 못 넘긴다고 하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의 감정을 존중한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두 번째, 인간은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 삶의 말년에 내 주위에 아무도 없다면 얼마나 쓸쓸할까? 사랑하는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고통스럽지 않게 삶을 마감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 중에 하나로 꼽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결국은 배우자를 만나서 자녀를 양육하며 살아가야 행복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마 아직까진 소수를 제외하고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낼 수 있으며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풍족하진 않아도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거나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욕구는 다를 것이다.

그런데 남성 또는 여성 한쪽을 가리켜 "외모 또는 처녀성을 따진다"고 비난하거나 "돈만 밝히는 존재이며 멍청하게 속지 말아라"라며 주의를 주는 사람들은 정신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연애의 사전적 뜻은 [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며 사랑함]이다.
사랑의 사전적 뜻은 [이성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 상태]이다.

연애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름답게 한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기쁘게 해 주고 싶어서...

잠깐의 시간을 내어 검색을 해 보니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좋은 글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결론은 이거였다.
"남성들이여. 너무 조급해 하지 말아라. 여성은 조급해 하는 그대들을 쉽사리 받아주지 않는다."

덧붙여 여성들에게 한 마디 해 주고 싶다.
"여성 여러분,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그 한 가지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여러분에게 있는만큼 그것을 너무 악용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은 똑같다 라는 말을 상기하는 순간 여러분은 이 세상 모든 여자들과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주위를 가만 살펴보면 눈치 빠르고 요령있는 사람들은 여자를 쉽게 사귀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말 한번 건네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다가가려 해도 오해받기 쉽상이었고 거기서 끝이었다.

이 글을 포스팅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내가 연애에 대해 일정 시간 집중해서 생각하고 글까지 쓰게 될 줄이야.
끝으로 우리 나라가 좀 더 좋은 나라가 된다는 것은 "돈 때문에 사랑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없는 사회"가 되는 것을 포함한다고 말하고 싶다.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이 남성을 만날 때 그 사람의 경제적 능력을 1순위로 보는 것이 너무나 당연시되는 사회.
심지어 교수가 될 애인과의 결혼을 고민하게끔 만드는 남자친구의 빚.

조금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것이 사상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는가?



[후불제 민주주의] 복지

2009/03/20 01:14 | Posted by B군
저자인 유시민은 대한민국 제44대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그가 재직했던 1년 3개월여 동안 보건복지부 내에서 이뤘던 성과를 살펴보면 그가 가진 복지에 대한 마인드를 잘 알 수 있다.

기초노령연금, 장기요양보험 신설
국민연금 및 건강보험 개혁

많은 사람들이 그를 경제학 전공자로 알고 있다. 정확히 얘기하면 보험과 관련된 경제학을 전공했다.

장관으로 입각되어 업무를 시작할 때 그의 해박한 지식에 보건복지부 내 직원들도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나는 당시 대구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할 당시 동석하여 이 얘기를 들었고 그와 함께 이런 말도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 해야 합니다."

결국 그가 2003년 처음 고양시 지역구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 내걸었던 공약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보건복지위원회에 들어가 대한민국 보건복지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지역구를 등한시했다는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2007년 출간된 "대한민국 개조론"에는 대한민국 보건복지 정책에 많은 양을 할애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대목을 살펴보자.

"산 사람의 목숨에 값을 매길 수 있을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목숨은 무한한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 그렇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이 운영하는 의료급여제도를 보면 그렇다고 말해야 합니다.
... 중략 ..
돈이 없어서 죽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떄문에, 국가가 무한정 치료비를 부담하는 제도를 대한민국은 가지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은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문명의 제도, 이것이 바로 의료급여제도입니다."

그러나 이 훌륭한 제도에도 약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그는 이 문제점을 바로 잡고자 부임 후 가장 먼저 제도 개혁 작업에 착수하였다.

책에서 인용된 사례를 옮겨보겠다.

"홍길동 씨는 일어나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갑니다. 대여섯 군데 병원을 돌며 간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처방을 받으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처방전은 모두 특정한 약국들에 갖다주었습니다. 그러다 막차를 타고 집에 갑니다. 다음날 아침에도 똑같은 일과를 시작합니다. 물론 병원과 약국의 불법행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해서 홍길동 씨의 건강이 좋아지지도 않았거니와, 보건복지부는 이 사람이 이토록 자주 병원에 다니는 이유는 고사하고, 그런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병원과 약국의 청구서를 받고 돈을 다 내준 다음, 뒤늦게 통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잘잘못을 떠나 이런 세세한 사실들을 책을 통해 밝힘으로써 독자 또는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려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재직 중에 이룬 큰 성과 중에 하나가 되었고 이로 인해 우리는 더 많은 혜택(암 진료비 보장)을 받을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 의료보험의 질적 향상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후불제 민주주의로 돌아와서,

우리 나라의 경제 상황을 살펴보자.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펀드매니저는 최고의 선망 직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나도 소액이나마 주식에 투자하여 기대 이상의 수익을 얻어본 경험도 있기에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환율의 급상승으로 원자재 값은 폭등하였고, 원화 가치하락으로 수출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말인지 깨닫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와 함께 우리 나라의 복지 제도가 후퇴하고 있다. 구청에서 제공하는 어머니 교실 등의 예산이 가장 먼저 삭감되었고, 삭감된 예산은 경제 분야에 집중되고 있으며 급기야 빚까지 내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더 암울한 것은 이러한 예산들이 대개 건설 분야에 쏠리고 있다는 점이다.

도로, 철도 등 SOC 분야에 투자를 하는 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의 계획을 앞당기면서까지 예산을 쏟아붓는 것에 주력하는 것보다 사회투자에 신경을 쓰는 것이 어떨까 싶다.
사람에 신경을 쓰자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일자리 창출에 더욱 도움이 되고 사회 약자들에게 진정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경제를 먼저 성장시키고 복지에 신경쓰자는 말은 50-60년대에나 통하던 말이다. 좋은 복지 제도가 국가 경쟁력을 드높이는 데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 저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성공한 나라, 불행한 국민. 이런 말이 왜 나왔는지 아는가?



[후불제 민주주의] 1장 행복

2009/03/13 13:56 | Posted by B군

당신의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생의 목적은?

수 많은 단어를 열거하므로써 설명할 수 있지만 우리는 또한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행복"

헌법 제10 조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5 공화국이라 일컫는 전두환 집권 시절 탄생한 법조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유시민은 헌법 제10 조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행복추구권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 그전에는 전혀 몰랐습니다.
노력을 안 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다함께 노력하자고 역설합니다.
국가 최고 지도자의 선한 의지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민주주의라면,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휘청거릴 수 있는 민주주의라면 이제는 각성해야 할 때라고......

성공한 나라, 행복한 국민

권력자 보다 국민이 높고, 그보다 애국자가 더 존경받는 대한민국
국가를 위해 희생되는 것이 아닌 개개인이 행복을 추구할 때 비로소 애국 시민이 되는 대한민국

서양 국가들에 비해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이룩한 성공에 대한 대가를 치루고 있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위해야 하고, 목적이 무엇인지 이 책은 첫 장의 제목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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