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에 해당되는 글 14건
- 2009/03/31 또다른 새로움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 2009/03/31 3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1)
- 2009/03/29 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 2009/03/28 10년 후면 어떻게 될까?
- 2009/03/26 내가 글을 쓰는 이유
- 2009/03/24 [기득권 이야기 2] Line이 그렇게 좋니?
- 2009/03/22 [군대 이야기] 기득권에 저항했던 초임 하사
겨울의 흔적이 남아있는 3월과는 달리 4월은 완연한 따스함이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바람이 많이 붑니다. 어제에 이어 주 중에 또 비 소식이 있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꽃망울이 다 터지기 전에 왠 수난인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움츠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요.
주머니가 가볍고, 머리는 무거운 시기에 움직이지 않으면 그대로 굳어버릴지도 모릅니다.
목요일과 일요일 날씨가 좋다고 합니다.
이날만큼은 무형의 고통에서 벗어나 사람 구경도 하고 땀도 흘려보는 건 어떨런지요.
보고 싶은 사람도 많고 새로 인연을 만들고 싶은 사람도 많지만
정작 자신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힘든 일이죠?
새로운 시작은 희망입니다.
새로운 계절엔 희망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바람이 많이 붑니다. 어제에 이어 주 중에 또 비 소식이 있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꽃망울이 다 터지기 전에 왠 수난인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움츠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요.
주머니가 가볍고, 머리는 무거운 시기에 움직이지 않으면 그대로 굳어버릴지도 모릅니다.
목요일과 일요일 날씨가 좋다고 합니다.
이날만큼은 무형의 고통에서 벗어나 사람 구경도 하고 땀도 흘려보는 건 어떨런지요.
보고 싶은 사람도 많고 새로 인연을 만들고 싶은 사람도 많지만
정작 자신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힘든 일이죠?
새로운 시작은 희망입니다.
새로운 계절엔 희망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1월이 지나갑니다. 1년의 1/12가 지나갔습니다.
2월이 지나갑니다. 1/6이 지나갔습니다.
3월이 지나갑니다. 1/4이 지나갑니다.
시간은 이렇게 점점 빠르게만 흘러갑니다.
나이가 오래될수록 더 그런다죠?
어디가 끝인지 짐작할 수 없는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흘러만 갑니다.
그런데 이것도 다 착각이랍니다. 바로 상대성 이론이죠.
가끔은 야속하고, 가끔은 멈춰주었으면 하는 녀석.
제발 여기서 시간이 멈춰주었으면 했던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 기억들이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그럴 땐 차라리 사라지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3월의 마지막 날을 이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2월이 지나갑니다. 1/6이 지나갔습니다.
3월이 지나갑니다. 1/4이 지나갑니다.
시간은 이렇게 점점 빠르게만 흘러갑니다.
나이가 오래될수록 더 그런다죠?
어디가 끝인지 짐작할 수 없는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흘러만 갑니다.
그런데 이것도 다 착각이랍니다. 바로 상대성 이론이죠.
가끔은 야속하고, 가끔은 멈춰주었으면 하는 녀석.
제발 여기서 시간이 멈춰주었으면 했던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 기억들이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그럴 땐 차라리 사라지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3월의 마지막 날을 이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Trackback 0 And
Comment 1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끝없이 외치다 보면 언젠가 내 앞에 나타나 줄까요?
한번쯤은 그렇게라도 보고 싶을 때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어요. 다 알고 있다고 믿고 싶은 걸지도 모르지만요.
문제는 가슴과 배가 따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다이어트 해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먹으면 안 되는데 음식에 손이 가는 그 때를
별 수 있나요.
이 또한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사람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되뇌입니다.
"보고 싶습니다."
한번쯤은 그렇게라도 보고 싶을 때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어요. 다 알고 있다고 믿고 싶은 걸지도 모르지만요.
문제는 가슴과 배가 따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다이어트 해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먹으면 안 되는데 음식에 손이 가는 그 때를
별 수 있나요.
이 또한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사람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되뇌입니다.
"보고 싶습니다."
NIKON D50 | Aperture priority | 1/400sec | F/4.0 | +0.33 EV | 42.0mm
Trackback 0 And
Comment 0
1999년 3월, 고등학생이 되었다.
우리 나라 청소년들이 입시 경쟁에 뛰어드는 시점. 바로 그 시작에서 나는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끼며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 하면서 착실히 공부하려고 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너희들이 고등학교 가면 지금 반 등수 x2가 될테니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고 충고를 들었다.
설마하는 마음에 치룬 첫 번째 시험! 중3 때 들었던 그 말이 딱 맞아드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 분명 있을 거라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우리 나라 청소년들이 입시 경쟁에 뛰어드는 시점. 바로 그 시작에서 나는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끼며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 하면서 착실히 공부하려고 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너희들이 고등학교 가면 지금 반 등수 x2가 될테니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고 충고를 들었다.
설마하는 마음에 치룬 첫 번째 시험! 중3 때 들었던 그 말이 딱 맞아드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 분명 있을 거라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내 생각과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글과 말로서 가능하다.
말은 고칠 수도 없고, 하고나면 후회가 남기도 한다. 그래서 가급적 말을 아끼려고 한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아야 되는데 가끔 주체하지 못하고 마구 뱉어내기도 한다. 역시나 후회가 남는 일이다. 항상 말은 하고나면 좀 더 좋은 말이 떠오른다. 아이러니다. 게다가 듣는 사람은 그 많은 말들 중에 안 좋은 것만 기억에 남긴다. 최악이다.
반면에 글은 쓰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쓰다가 몇 번씩 고치면서 다듬어 갈 수 있다. 물론 쓰고 나서도 고친다.
글은 그 자체로서 기록이 된다. 인터넷이 막 활성화될 무렵부터 조금씩 습관을 들인 게 지금의 블로그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블로그에 온 힘을 쏟아서 수익도 낸다는데 난 그렇게는 못 하겠더라.
이전보다 월등히 발전한 인터넷 환경과 검색 기술 덕분에 또 하나의 비즈니스 영역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로 인해 인터넷 공간에서 마음만 먹으면 블로거들끼리 손쉽게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 예전 BBS나 인터넷 동호회처럼 제한된 공간이 아닌 인터넷이라는 사실상 제한이 없는 무한한 공간에서 말이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긴 한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라서 아직 엄두를 내지 못 하고 있다.
글을 쓰고 댓글도 달아주고 이러면 글 쓰는 일이 더욱 즐거울 테니 한번쯤은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일듯
아직 제목에 부합하는 얘기를 안 했다.
이제 그 얘기를 해보려 한다.
그 첫 시작은 1999년이었다.
인터넷 광풍이 우리 나라를 엄습해 오고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자기 집을 갖추고, 나도 만들었다.
주로 지인들이 방문자의 대부분이었고, 수동으로 신청해야 등록이 되는 인터넷 검색 엔진에 등록도 해놨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좋은 자료가 많이 생기면 방문객들도 늘어날 텐데 그렇게는 못 했고 나중엔 그런 것에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됐다.
지금처럼 블로거 뉴스가 대형 포털에 노출이 되고, 유명한 블로그의 트랙백을 통해 내 블로그를 노출시킬 수 있는 구조는 그때 당시 불가능할 줄 알았다. 그런 개념조차 없었다.
현재도 서비스되고 있는 싸이월드는 아직도 그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한 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그 명성이 많이 누그러졌다. 사적인 사진이나 글을 올리는 유저들이 많기에 1촌이라는 폐쇄적인 운영방식을 바꾸긴 힘들 것처럼 보인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공간에 게시판을 열어놓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다.
그냥 썼다. 끄적끄적. 혹시나 누가 볼까 약간 신경도 쓰면서 말이다.
중간에 싸이월드도 잠깐 이용했지만 역시나 내 타입은 아니었다.
2006년 블로그를 처음 개설하고, 그 때 시작한 사진을 한 장씩 올리며 블로깅을 했다.
글, 사진, 음악
이 세 가지만으로도 많은 글을 쓸 수 있었다.
심적으로 많은 위로를 필요로 했던 시기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었나 생각해 본다. 글을 하나 올리는 데도 신경을 썼던 걸로 기억한다. 사진을 찍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내 생각 또는 하고 싶은 말
2007년 티스토리로 공간을 옮기고 또 다른 변화를 맞이했다.
4년간의 군 생활도 마감했고, 생활 정치라는 것을 겪게 된다. 거기에다 현실에 대한 고민과 내게 당면한 과제들도 함께.
방문자 수도 부쩍 늘었다.
내 블로그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 어떤 정보를 찾아 헤매다 이곳에 오신 분들이다.
이 정보들보다 내가 쓰는 글 자체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게 내 바램이다.
더불어 글로 인해 내 생각이 정리되거나 또는 그 방법을 조금씩 알아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말은 고칠 수도 없고, 하고나면 후회가 남기도 한다. 그래서 가급적 말을 아끼려고 한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아야 되는데 가끔 주체하지 못하고 마구 뱉어내기도 한다. 역시나 후회가 남는 일이다. 항상 말은 하고나면 좀 더 좋은 말이 떠오른다. 아이러니다. 게다가 듣는 사람은 그 많은 말들 중에 안 좋은 것만 기억에 남긴다. 최악이다.
반면에 글은 쓰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쓰다가 몇 번씩 고치면서 다듬어 갈 수 있다. 물론 쓰고 나서도 고친다.
글은 그 자체로서 기록이 된다. 인터넷이 막 활성화될 무렵부터 조금씩 습관을 들인 게 지금의 블로그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블로그에 온 힘을 쏟아서 수익도 낸다는데 난 그렇게는 못 하겠더라.
이전보다 월등히 발전한 인터넷 환경과 검색 기술 덕분에 또 하나의 비즈니스 영역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로 인해 인터넷 공간에서 마음만 먹으면 블로거들끼리 손쉽게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 예전 BBS나 인터넷 동호회처럼 제한된 공간이 아닌 인터넷이라는 사실상 제한이 없는 무한한 공간에서 말이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긴 한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라서 아직 엄두를 내지 못 하고 있다.
글을 쓰고 댓글도 달아주고 이러면 글 쓰는 일이 더욱 즐거울 테니 한번쯤은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일듯
아직 제목에 부합하는 얘기를 안 했다.
이제 그 얘기를 해보려 한다.
그 첫 시작은 1999년이었다.
인터넷 광풍이 우리 나라를 엄습해 오고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자기 집을 갖추고, 나도 만들었다.
주로 지인들이 방문자의 대부분이었고, 수동으로 신청해야 등록이 되는 인터넷 검색 엔진에 등록도 해놨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좋은 자료가 많이 생기면 방문객들도 늘어날 텐데 그렇게는 못 했고 나중엔 그런 것에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됐다.
지금처럼 블로거 뉴스가 대형 포털에 노출이 되고, 유명한 블로그의 트랙백을 통해 내 블로그를 노출시킬 수 있는 구조는 그때 당시 불가능할 줄 알았다. 그런 개념조차 없었다.
현재도 서비스되고 있는 싸이월드는 아직도 그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한 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그 명성이 많이 누그러졌다. 사적인 사진이나 글을 올리는 유저들이 많기에 1촌이라는 폐쇄적인 운영방식을 바꾸긴 힘들 것처럼 보인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공간에 게시판을 열어놓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다.
그냥 썼다. 끄적끄적. 혹시나 누가 볼까 약간 신경도 쓰면서 말이다.
중간에 싸이월드도 잠깐 이용했지만 역시나 내 타입은 아니었다.
2006년 블로그를 처음 개설하고, 그 때 시작한 사진을 한 장씩 올리며 블로깅을 했다.
글, 사진, 음악
이 세 가지만으로도 많은 글을 쓸 수 있었다.
심적으로 많은 위로를 필요로 했던 시기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었나 생각해 본다. 글을 하나 올리는 데도 신경을 썼던 걸로 기억한다. 사진을 찍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내 생각 또는 하고 싶은 말
2007년 티스토리로 공간을 옮기고 또 다른 변화를 맞이했다.
4년간의 군 생활도 마감했고, 생활 정치라는 것을 겪게 된다. 거기에다 현실에 대한 고민과 내게 당면한 과제들도 함께.
방문자 수도 부쩍 늘었다.
내 블로그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 어떤 정보를 찾아 헤매다 이곳에 오신 분들이다.
이 정보들보다 내가 쓰는 글 자체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게 내 바램이다.
더불어 글로 인해 내 생각이 정리되거나 또는 그 방법을 조금씩 알아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기득권이 자리를 잡아가는 곳이라면 반드시 생기기 마련인 Line.
그 줄서기 문화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인간은 유전적으로 편한 것을 추구하게끔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고 한다.(인간의 이기심)
가끔 예외적인 것도 있다. 그러나 혹자는 그것 또한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하는 행동이기에 거기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뭐 거기까지 동의하긴 어렵지만, 대개 일신의 안위를 위해 생활해 왔고 그것이 인간 문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에 동의한다.
처음 태어나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경험하고, 학교 생활을 하면서 또래 집단이라는 무리를 형성하고, 사회에 나가서는 상급자를 중심으로, 동료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 내에 속하게 된다.
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이런 집단 속에서 중심이 되는 이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없으면 만든다.
집단은 서로의 소속감을 확인할 수 있고,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 준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여기까지 보면 나쁜 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A라는 회사에 다니는 김 씨와 이 씨. 이 두 사람은 진급을 앞두고 있는 경쟁 상대이며, 입사 동기이다.
입사 후부터 절친한 사이로 둘도 없는 친구지간이었지만 지금은 서로 만나는 일도 줄어들고 진급하는 것 외에는 여념이 없다."
근데 여기에 인간 관계라는 요소를 삽입해 보자. 그리고 관계라는 혜택을 본 사람이 진급을 했다.
이런 일이 없을 것 같나?
대인 관계로 혜택을 받기 원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득권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었다.
지연, 학연과 이권과 금권으로 이루어진 기득권들.
가끔씩 곪은 상처가 터지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일 것이다.
일단 무언가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그 끝이 우리의 이성으로 가늠하기 힘든 이상. 우리는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기득권이 그것을 방해하는 주요 원인일 것이다.
불과 몇 년 전, 모 자동차 회사 공장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수천만 원의 금액을 줘야 했다.
심지어 목욕탕 목욕관리사(x밀이)로 일하기 위해서 돈을 줘야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베푼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럼 화이트 칼라 직종은 어떨까? 차라리 돈을 주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든다.
바로 위의 사례는 내가 오바하는 거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인간이란 본성이 바르게 살도록 되어 있다. 비뚤어진 삶의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오래 잘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뿐이다."
나는 이 말을 믿고 싶다.
비록 내가 잘 나고 부유하지 못 하지만,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가듯 나의 길을 찾아가고 싶다.
나에게는 "약간의 긴장감"이면 충분하다.
그 줄서기 문화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인간은 유전적으로 편한 것을 추구하게끔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고 한다.(인간의 이기심)
가끔 예외적인 것도 있다. 그러나 혹자는 그것 또한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하는 행동이기에 거기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뭐 거기까지 동의하긴 어렵지만, 대개 일신의 안위를 위해 생활해 왔고 그것이 인간 문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에 동의한다.
처음 태어나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경험하고, 학교 생활을 하면서 또래 집단이라는 무리를 형성하고, 사회에 나가서는 상급자를 중심으로, 동료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 내에 속하게 된다.
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이런 집단 속에서 중심이 되는 이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없으면 만든다.
집단은 서로의 소속감을 확인할 수 있고,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 준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여기까지 보면 나쁜 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A라는 회사에 다니는 김 씨와 이 씨. 이 두 사람은 진급을 앞두고 있는 경쟁 상대이며, 입사 동기이다.
입사 후부터 절친한 사이로 둘도 없는 친구지간이었지만 지금은 서로 만나는 일도 줄어들고 진급하는 것 외에는 여념이 없다."
근데 여기에 인간 관계라는 요소를 삽입해 보자. 그리고 관계라는 혜택을 본 사람이 진급을 했다.
이런 일이 없을 것 같나?
대인 관계로 혜택을 받기 원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득권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었다.
지연, 학연과 이권과 금권으로 이루어진 기득권들.
가끔씩 곪은 상처가 터지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일 것이다.
일단 무언가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그 끝이 우리의 이성으로 가늠하기 힘든 이상. 우리는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기득권이 그것을 방해하는 주요 원인일 것이다.
불과 몇 년 전, 모 자동차 회사 공장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수천만 원의 금액을 줘야 했다.
심지어 목욕탕 목욕관리사(x밀이)로 일하기 위해서 돈을 줘야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베푼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럼 화이트 칼라 직종은 어떨까? 차라리 돈을 주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든다.
바로 위의 사례는 내가 오바하는 거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인간이란 본성이 바르게 살도록 되어 있다. 비뚤어진 삶의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오래 잘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뿐이다."
나는 이 말을 믿고 싶다.
비록 내가 잘 나고 부유하지 못 하지만,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가듯 나의 길을 찾아가고 싶다.
나에게는 "약간의 긴장감"이면 충분하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자기 전 누워서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최근에 겪었던 좋지 않았던 일.
앞으로에 대한 걱정.
어제는 좀처럼 잠 들 수 없는 밤이었습니다.
최근에 겪었던 좋지 않을 일과 과거에 겪었던 일까지 줄줄이 사탕으로 엮여서 온통 제 머리 속을 가득 채웠거든요.
저를 잠 못 이루게 했던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합니다.
그게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기득권"입니다.
2006년이었습니다. 저는 부사관으로 군 복무를 하고 있었고, 처음 2년간 근무하던 곳을 떠나 새로운 근무지로 발령을 받아 새로 부임한 상태였습니다.
그곳의 부사관들은 모두 같은 직별을 가지고 있었고, 저 혼자만 다른 직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장교도 있고, 병도 근무하는 부서였지만 누가 뭐래도 분위기는 부사관들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습니다. 뭐 이쯤 얘기하면 군생활을 경험하신 분들은 짐작하실 겁니다.
제 직별로 부임한 첫 보직자였고, 보통의 부사관들처럼 타 직별에는 그다지 관심없는 사람이었죠. 그들이 어떻게 생활을 하는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 생각했고, 조직도 상으로도 주로 장교 또는 저 혼자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내게 요구했던 것은 너의 정체성을 다시 잡아라 였습니다. (여지껏 너의 직별은 잊고 우리한테 기어라)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들이 나에 대해 적응했고, 저 또한 업무적으로 인정 받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기득권은 한번 생기면 깨지기 힘듭니다. 장교들이 이것을 깨기 위해 무리한 행동을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무리죠. 장교는 길어야 2년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발령납니다.
당시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보잘 것 없는 하사 계급장을 달고 있는 초급 간부였습니다.
처음에 엄청나게 갈등을 불러 일으켰고, 심지어 내쫓길 것만 같았으며, 저는 제 인사를 맡았던 분께 애걸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될리 만무하죠.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있었습니다.
같은 부서 사람들과 술 한번 제대로 안 마셔봤고, 저는 제 고집대로 해야 될 일을 찾아서 하나씩 해 나갔습니다.
대위 부서장과 준위/원사가 함께 있던 부서였죠. 그렇기에 저에게도 희망이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근은 차치하고서라도 출근은 가장 먼저 했습니다.
내 업무가 여기서 처음하는 것인만큼 그들에게 어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업무 보고를 만들어서 올리고, 나름의 재주로 예쁘게 꾸미고 그들의 취향에 맞췄습니다.
결코 좋아서 했다기 보다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사 계급장 달고 업무 보고를 하네...?"
처음 생긴 보직이라 대충 저를 보냈습니다만 전 그 직책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지휘 계통상 바로 부서장에게 연결될 수 있었죠. 부서 내 다른 부사관들은 제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장교들이 칭찬해 주고 그러니깐 일 잘 했나보다 그렇게만 생각했을 겁니다.
처음 3개월은 참으로 고됐습니다. 쉽게 어울리고 묻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제 딴에 자존심이 허락해 주질 않아서 말이죠.
그 이후로 돌아온 저에 대한 평판은 대충 이 정도 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고집 세고, 건방진 뭐뭐 정도...일은 뭐 그럭저럭...
근데 사회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직도 인간 관계입니다.
좋죠.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존중과 배려"라는 것이죠.
아마 군대였기에 박차고 나올 수 없어 나름의 살 궁리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업무에 집중하는 일이 생겼을 뿐이지 전역하고 나서 사회 생활하면서도 내가 그런 일을 겪을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너무 경험이 적고, 어려서 그런 것이겠죠?
근데 그게 과연 정상이고 올바른 것일까요?
"내가 나라에 충성하려고 군대에 있는 거지, 너한테 충성하려고 들어온 줄 아냐?"
바꿔 말하면 "회사에 보탬이 되려고 들어온 거지, 너한테 굽실 거릴려고 들어온 줄 아냐?"
제가 단언하건데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예의가 안 갖춰져 있다면 그 조직은 그들만의 그라운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다양함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새로운 것 또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최근에 겪었던 좋지 않았던 일.
앞으로에 대한 걱정.
어제는 좀처럼 잠 들 수 없는 밤이었습니다.
최근에 겪었던 좋지 않을 일과 과거에 겪었던 일까지 줄줄이 사탕으로 엮여서 온통 제 머리 속을 가득 채웠거든요.
저를 잠 못 이루게 했던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합니다.
그게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기득권"입니다.
2006년이었습니다. 저는 부사관으로 군 복무를 하고 있었고, 처음 2년간 근무하던 곳을 떠나 새로운 근무지로 발령을 받아 새로 부임한 상태였습니다.
그곳의 부사관들은 모두 같은 직별을 가지고 있었고, 저 혼자만 다른 직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장교도 있고, 병도 근무하는 부서였지만 누가 뭐래도 분위기는 부사관들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습니다. 뭐 이쯤 얘기하면 군생활을 경험하신 분들은 짐작하실 겁니다.
제 직별로 부임한 첫 보직자였고, 보통의 부사관들처럼 타 직별에는 그다지 관심없는 사람이었죠. 그들이 어떻게 생활을 하는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 생각했고, 조직도 상으로도 주로 장교 또는 저 혼자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내게 요구했던 것은 너의 정체성을 다시 잡아라 였습니다. (여지껏 너의 직별은 잊고 우리한테 기어라)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들이 나에 대해 적응했고, 저 또한 업무적으로 인정 받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기득권은 한번 생기면 깨지기 힘듭니다. 장교들이 이것을 깨기 위해 무리한 행동을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무리죠. 장교는 길어야 2년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발령납니다.
당시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보잘 것 없는 하사 계급장을 달고 있는 초급 간부였습니다.
처음에 엄청나게 갈등을 불러 일으켰고, 심지어 내쫓길 것만 같았으며, 저는 제 인사를 맡았던 분께 애걸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될리 만무하죠.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있었습니다.
같은 부서 사람들과 술 한번 제대로 안 마셔봤고, 저는 제 고집대로 해야 될 일을 찾아서 하나씩 해 나갔습니다.
대위 부서장과 준위/원사가 함께 있던 부서였죠. 그렇기에 저에게도 희망이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근은 차치하고서라도 출근은 가장 먼저 했습니다.
내 업무가 여기서 처음하는 것인만큼 그들에게 어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업무 보고를 만들어서 올리고, 나름의 재주로 예쁘게 꾸미고 그들의 취향에 맞췄습니다.
결코 좋아서 했다기 보다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사 계급장 달고 업무 보고를 하네...?"
처음 생긴 보직이라 대충 저를 보냈습니다만 전 그 직책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지휘 계통상 바로 부서장에게 연결될 수 있었죠. 부서 내 다른 부사관들은 제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장교들이 칭찬해 주고 그러니깐 일 잘 했나보다 그렇게만 생각했을 겁니다.
처음 3개월은 참으로 고됐습니다. 쉽게 어울리고 묻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제 딴에 자존심이 허락해 주질 않아서 말이죠.
그 이후로 돌아온 저에 대한 평판은 대충 이 정도 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고집 세고, 건방진 뭐뭐 정도...일은 뭐 그럭저럭...
근데 사회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직도 인간 관계입니다.
좋죠.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존중과 배려"라는 것이죠.
아마 군대였기에 박차고 나올 수 없어 나름의 살 궁리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업무에 집중하는 일이 생겼을 뿐이지 전역하고 나서 사회 생활하면서도 내가 그런 일을 겪을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너무 경험이 적고, 어려서 그런 것이겠죠?
근데 그게 과연 정상이고 올바른 것일까요?
"내가 나라에 충성하려고 군대에 있는 거지, 너한테 충성하려고 들어온 줄 아냐?"
바꿔 말하면 "회사에 보탬이 되려고 들어온 거지, 너한테 굽실 거릴려고 들어온 줄 아냐?"
제가 단언하건데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예의가 안 갖춰져 있다면 그 조직은 그들만의 그라운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다양함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새로운 것 또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